궁금소

조선시대 스타일로 복원해버린 경주의 신라 안압지

후니의 궁금소 2023. 12. 13.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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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고건축물 복원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유물이나 기록이 부족한 점보다도 복원 기술자들이 조선시대에 함몰되어 있다는 점이다. 마치 조선시대 스타일의 건축이 아니면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복원도, 복원 모형을 만들고 실제로 조선시대 스타일로 복원해버린다.

 

심지어 있는 그림, 기록, 유물을 무시해버리기 일쑤여서 그저 기괴할 따름이다. 예를 들어서 신라의 동궁에 속해 있었던 안압지 건물 복원이 있겠다.

 

 

 










 

안압지를 가본 분은 알겠지만 신라의 놀라운 조경 실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유적지다. 지금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 그러나 안압지에 세워진 건축물은 제대로 된 복원이 아니다. 

 

일단 건축물의 단청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말하는 '상록하단' 단청이 적용되었다. 상록하단이란 기둥은 붉은색 중심, 지붕 아래는 녹청색 중심으로 칠하는 걸 말하는데, 이는 고려 말부터 살짝 유행을 타고 조선시대에 들어서야 대세를 이룬 색배치다. 고려시대까지 우리나라의 지붕 아래 단청은 붉은색이 많았고, 기둥은 취향껏 칠했다. 심지어 조선 중기의 그림에도 상록하단이 적용되지 않은 관청을 발견할 수 있다. 녹청색 안료 유물이 발견되긴 했으니 사용되지 않은 건 당연히 아니지만, 동시에 붉은색으로 칠해진 서까래가 발견되기도 했으므로 녹청색을 배경으로 깔고서 단청을 칠했을 리 없다는 게 학계의 입장이다. 

 

고려시대 그림을 살펴보면 검은색으로 칠한 기둥이 멀쩡하게 보이고, 불화를 살펴봐도 지붕 아래를 녹청색으로 칠한 것, 붉은색으로 칠한 것이 다 발견되고 있다. 상록하단이 유행하기 이전엔 대체로 저런 느낌이었을 거다. 신라라면 말할 것도 없다.

 

 

 

- 공민왕 기위도. 지붕 아래를 녹청색으로 칠했지만, 기둥은 검은색으로 칠했다. 바닥에는 전돌이 깔려 있다. 공민왕이 원나라의 건물을 보고 그린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는데, 맨 오른쪽 인물이 앉은 게 청자의자여서 고려를 보고 그렸음이 확정되었다. 청자의자 유물이 지금 이화여대에 박물관에 고스란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잘 살펴보면 지붕을 금동으로 장식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 확대해서 보면 청자의자임이 확실해진다.

 

 


- 이게 청자의자다.











- 고려 아집도대련을 잘 살펴보면 금동으로 지붕을 장식했다는 걸 알 수 있으며, 지붕 아래를 흰색 + 붉은색 + 금색으로 칠하고 기둥은 검은색으로 칠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안압지의 복원 건물이 빼먹은 건 또 하나가 있다. 금동장식과 순금장식. 귀족들의 저택으로 보이는 유적지에도 계단 전체를 금동으로 장식한 유물이 등장했을 정도로 금빛을 사랑하던 나라가 신라인데 동궁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 않나. 순금과 금동 장식들은 당연하다는 듯 동궁과 월지에서 왕창 발견되었다. 분명히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경주의 경제력이 떨어지고 많은 금속이 외부로 유출되거나 도둑 맞았을 게 뻔함에도 유적지에서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

 

이것들은 당연하다는 듯 안압지 복원에 적용되지 않았는데, 순금은 자칫 훔쳐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금동은 대체 왜 빼먹은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 안압지에서 발견된 벽돌들

 

 

 

한편, 안압지 안쪽에 세워졌던 동궁을 복원하는 사업은 유네스코가 기록과 유적의 부실을 이유로 들어서 반대했다. 그러나 경주시가 이를 무시하고 그냥 진행시킬 기세여서 많은 사람의 걱정을 사고 있다. 

 

 


- 검은색으로 칠한 기둥의 조선시대 중기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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