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련 스파이 부부의 기나긴 여정
1970년 10월 9일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현지에서 레스토랑의 오너이자 작은 무역업체를 경영하던 라디슬라프 마르코니스가 부인,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아파트에 아르헨티나 정보국 SIDE의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가족 사진
라디슬라프와 부인 이르마는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며 SIDE 요원들에게 혐의를 부인했지만 가내 수색 중 발견된 비밀 문서와 추후 발견된 은닉 상자등의 증거를 내밀자 스파이 혐의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KGB의 아르헨티나 주재 요원이었던 바딤 마요로프(라디슬라프 마르코니스)와 라리사(이르마) 부부는 체포 후 어떻게 탄로가 났는지 열심히 복기해봤지만 끝까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미국 CIA까지 포함된 SIDE의 심문과 조사 이후 미국으로 이송되어 계속 조사를 받게 된 바딤 가족은 워싱턴 DC 인근 CIA의 안가에서 조사받던 중 홀연히 사라지고 만다
어떻게 된 일 일까?
1950년대 레닌그라드 KGB 최고학교와 2년간의 해외 정보원 과정을 마친 바딤 마요로프는 친구의 결혼식에서 만난 라리사와 사랑에 빠져 얼마 후 결혼까지 하게 되고 그 후 신부에게도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결혼 얼마 후 해외 출장을 가게 된다
바딤의 임무는 미국으로 입국한 후 정보원 역할을 하라는 것. 이를 위해 그는 암호명 웨스트, 그리스계 아르헨티나인 라디슬라프 마르코니스로 위장하여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레스토랑 바를 운영하며 향후 미국으로 합법 이민을 가는 것으로 시나리오를 짜게 된다
젊은 시절의 라리사
한편 모스크바에 홀로 남은 라리사는 KGB 본부로 불려 간 후 남편 바딤이 사실 스파이 임무를 갖고 아르헨에 주재 중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며 그녀에게는 남편을 그냥 기다리던지 아니면 스파이 교육을 받고 남편과 합류하여 부부 스파이로 활동하던지 선택할 수 있다고 하자 라리사는 당연히 남편과의 합류를 택한다
3년간 스파이 교육을 받은 라리사는 (그 중 2년은 동독과 서독에서) 독일인 이르마가 되어 KGB의 지시대로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그토록 바라던 남편 바딤과 만나게된다. 3년여 만이었다
아르헨티나 남성 라디슬라프와 서독 여성 이르마로 위장 신분을 갖게된 둘은 스위스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영국으로 신혼 여행을 간다. 런던에서 KGB의 공작금과 지시를 받은 부부는 아르헨티나로 돌아온 후 첩보 활동을 하게된다
스파이 세계에선 부부 간첩이 대단히 유용하게 쓰인다. 둘 중 하나는 활동을 하고 다른 하나는 은닉과 전달을 하는 콤비 플레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딤 부부는 2차대전 후 아르헨티나로 몰려든 나치 전범들에 대한 정보를 KGB 본부에 전달하고 KGB는 소속 정보원이 이를 서독 정보기구인 BIND에 전달하게 하여 서독 측의 환심을 사게 만들었다. 그가 바로 폰 호엔슈타인 남작으로 위장한 KGB 서독 스파이망의 레전드 유리 드로즈도프였다 (후에 KGB 대외공작부 총책 역임)
유리 드로즈도프
1967년 바딤 부부는 소련으로 휴가 차 온 후 미국으로 근거지를 옮겨 본격적인 스파이 활동을 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리곤 아르헨티나로 돌아오는 길에 코펜하겐의 소련 대사관의 올렉 고르디예프스키로 부터 공작금을 수령한다
고르디예프스키는 이미 영국의 MI6에 포섭된 후 였고 그는 런던에 이 스파이 부부에 대해 알리게 된다
올렉 고르디예프스키 젊은 시절
아르헨티나로 돌아온 바딤 부부는 미 CIA와 아르헨 SIDE의 감시 하에 놓이게 되었으나 부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에 수상한 사람들이 포착되기 시작하고 평소에 비밀 얘기를 나누던 인적없는 해변에서 까지 움직임을 느끼게 되자 바딤 부부는 들켰다는 걸 직감하고는 주변 정리 후 아르헨티나를 떠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1970년 10월 9일 SIDE요원들이 바딤과 라리사 부부를 체포하며 이들의 스파이 활동은 끝나게 되었다
9개월 여의 아르헨티나의 SIDE에서의 조사 후 CIA의 요청으로 바딤 부부와 두 딸은 미국으로 압송되어 CIA의 심문을 받게 되었다. CIA 소유의 안가에 억류된 채 조사를 받았지만 아직 본격적인 스파이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인 이 부부는 진술할 내용이 마땅히 없는 상태. 따라서 감시도 느슨해졌고 동네 산책도 허용되는 등 조사받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상태까지 된다
1972년 1월 7일 두 딸과 함께 산책에 나선 바딤 부부는 감시의 눈을 따돌리고 택시를 탄 후 워싱턴의 주미 소련 대사관으로 도주에 성공한다
대사관에서 KGB 본부와 연락이 되자 바딤 부부는 내부에 밀고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렸고 이들은 전용기편으로 모스크바로 귀환하게 되었다
이제 모든 게 끝난 걸 까? 바딤 부부는 모스크바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아니 도리어 이중간첩으로 의심하며 가혹한 심문을 받게 되었고 모든 공작의 실패 책임을 지게 되었다
이중간첩 혐의는 벗었으나 모스크바에서 쫓겨나 시골인 칼루가로 거주지가 이전되었고 KGB에선 파면, 향후 모든 공직을 맡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연금 및 각종 혜택도 모두 박탈되었다
2007년 영국의 기사 작위를 서훈받은 올렉 고르디예프스키
1970년 체포 이후 20여년간 바딤 부부는 그들의 공작활동 실패가 도대체 어디부터 잘못이 시작되었을까를 생각하고 생각했다. 귀양지나 마찬가지인 칼루가에서 가난하고 고단한 생활을 보내면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이 부부의 생명선이나 마찬가지였다
소련이 해체 직전으로 몰리고 많은 비밀들이 그냥 신문에 기사로 실리게 된 후 ‘1985년의 고르디예프스키 망명 사건’을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 신문에서 읽게 된 바딤 부부는 올렉 고르디예프스키의 사진을 보자마자 알았다. 바로 그가 밀고자라는 사실을. 체포 후 정확히 20년이 지난 1990년이었다
바딤 부부의 최근 사진
코펜하겐의 주덴마크 소련 대사관에서 고르디예프스키와 만난 후 라리사는 남편 바딤에게 말했다 ‘아주 매력적인 젊은이에요’
바로 KGB로 편지를 써 보냈고 KGB와 면담한 후 2주만에 바딤 부부는 계급과 연금을 포함한 모든 직책과 혜택이 복원되었고 모스크바 거주도 허락받게 된다
현재 바딤 마요로프와 부인 라리사는 스몰렌스크 인근에서 조용한 은퇴 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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