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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은 1939년 4월 1일에 끝이 났다.
전쟁은 끝이 났지만, 이미 스페인 대부분의 영토는 초토화가 된 상태였다.
이는 스페인의 아름다웠던 문화계도 마찬가지였다.
전쟁 때 많은 예술인들이 휘말려 죽기도 했고,
전쟁이 끝난 직후에는 프랑코 정부의 검열로 기존의 수준 높은 문예지들이 모두 폐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스페인의 예술을 살리기 위한 시도들이 있었고,
그런 시도가 가장 적극적으로 꽃핀 곳은 카탈루냐 주의 핵심 바르셀로나였다.
젊은 문인들은 바르셀로나에서 집결하여 데스티노(Destino)라는 문화 주간지를 펴냈고,
이는 예술에 목말라 있던 스페인 시민들에게 열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점점 인기가 높아지자 데스티노의 운영진들은 스페인 최초의 문학상을 제정하자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고,
이 계획은 현재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상이자 권위 있는 나달 문학상(Premio Nadal)이 되었다.
(상의 이름은 데스티노의 초기 편집장이었지만 27살에 요절한 우헤니오 나달 가야의 첫 번째 성에서 따왔다.)
스페인 최초의 문학 상 수상자이자 스페인 내전 직후의 문학을 대표하게 될 주인공이 되기 위해
총 26편의 소설이 1944년 제 1회 나달 문학상에 출품되었다.
이중에서는 신인 뿐만 아니라 내전 이전의 이름 있는 작가들도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그들 중 한 명이 받게 될 가능성이 엄청 높았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제 1회 나달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은
카르멘 카포렛이라는 한 이름 없는 신인의 <나다(Nada)>라는 소설이었다.
내전 이후 안드레아라는 지방 소녀가 바르셀로나의 외가 친척들과 살면서 겪는 일들을 담은 이 소설은,
상당히 간단한 플롯에 스페인 내전 이후의 혼란한 사회와 허무주의에 빠진 피폐한 개인들을 훌륭하게 담아냈다.
문학적으로 획기적이었던 이 소설은 이 신인이 22세에 불과한 여성이라는 게 알려졌을 때
당시 심사 위원단을 포함한 스페인 문학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
스페인 최초의 문학상 수상자이자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기 때문에
그녀는 단숨에 슈퍼스타가 되었고, 나라 전체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했다.
언론들은 그녀에게 작품을 내기 전의 삶, 차기작 예고, 다른 작가들에 대한 평가 등등
그녀를 따라다니면서 각종 질문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내성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이었기 때문에
유명세에 대한 대가를 감당하지 못했고, 결국 자취를 감추고 은둔 생활을 했다.
그녀는 이후에 평범한 삶을 살다가 말년에는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했다.
문학비평가이자 자신의 스승이었던 마누엘 세레살레스와 결혼을 하여 다섯 자녀를 두었고,
주목을 받지 못한 세 편의 장편소설과 두 권의 단편집을 발표하기도 했던 그녀는
1970년 남편과 이혼한 이후에는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 10년 전부터 알츠하이머가 악화되면서 고통을 받다가
2004년에 마드리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스페인 전후 문학에 큰 영향을 준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마드리드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거리와 공원이 있고,
2007년에는 그녀가 겪은 말년의 고통을 애도하기 위해
'카르멘 라포렛 시립 노인돌봄센터'가 마드리드에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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