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소

2024년 대만 총통선거 한눈에 보기

후니의 궁금소 2024. 1. 11.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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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3일, 대만에서 총통 선거가 열림. 시국이 시국인지라 세계 정세에 있어서도 상당히 중요한 선거가 될 것으로 보임.

 

국내에서는 총통이라고 하면 히틀러(...)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텐데, 중화권에서는 영어 President를 '총통'으로 번역했음. '대통령'은 일본식 번역. 참고로 중화권에서는 독일어 Führer를 '주석'으로 번역했음.

 

이번 대만 총통 선거는 3파전으로 치뤄지게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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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진보당 - 라이칭더

 

선거 슬로건 - 올바른 사람을 선택하고 올바른 길을 가자!

 

민주진보당은 1986년, 국민당 독재에 반대하던 민주화 운동가들이 설립한 정당. 느슨한 연계로 활동해오던 대만의 민주화운동가들이 세력을 규합할 필요를 느끼고 당시에는 금지되어있던 정식 야당을 설립한 것이 시초임. 당시 대만 총통이던 장징궈(장제스의 아들)이 상대적으로 온건한 통치를 펼쳤기에 야당의 설립이 묵인되었다고.

 

2000년 선거에서 전직 타이베이 시장인 천수이볜이 총통에 당선되어 처음으로 여당이 되었고, 이후 2016년 현직 총통 차이잉원(사진)이 당선되어 다시 여당이 되었음.

 

차이잉원은 2016년과 2020년에 2번 당선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선거에 출마할 수 없어 부총통인 라이칭더가 선거에 나오게 되었음.

 

라이칭더는 의사 출신 정치인으로, 1994년 정계에 입문하여 입법위원(국회의원) 4선을 지내고 타이난시장 재선을 지낸 중진 정치인으로써 가진 안정감이 장점.

 

하지만, 차이잉원 8년간 쌓여온 민진당에 대한 피로도도 피로도거니와,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그의 대독 성향일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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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대만의 통일반대론은 2가지로 나뉨.




화독(중민국 립)

 

온건한 통일반대론.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과 다른 나라지만, 대륙 시절 중화민국의 역사와 유산, 정부 상징물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임. 민주진보당의 양대 주류 세력 중 하나이며, 차이잉원 현 총통은 화독 성향임.

 

중국국민당 내에서도 소장파 일부는 화독 성향으로 불리며(물론 국민당인지라 화독이더라도 대륙과의 교류에 적극적이라는 차이는 있음.), 대표적인 것이 장완안 현 타이베이시장(참고로 장제스의 증손자임. 장제스의 증손자가 화독 성향이라는건 상당히 특이할만한 점.).

 

대독( 립)

 

강경한 통일반대론. 대륙과의 역사를 근본적으로 단절하고 (가칭)대만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새출발하자는 입장. 초창기 민주진보당은 대독이 대다수였으며, 민진당의 첫 총통인 천수이볜 역시 대독 성향.

 

위의 그림에서 들고 있는 초록색 국기가 바로 대독이 내세우는 (가칭)대만 공화국 국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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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국 역시 강경파인 대독은 탐탁스럽지 않아하는데, 그야 당연히 대독이 상대적으로 대륙의 중국을 자극할 여지를 더 많이 주니까.

 

라이칭더도 이를 의식했는지 총통 선거에 나선 이후부터는 발언의 수위를 자제하고, 당선 이후에도 대만 독립선언을 하지 않을것이라는 발언과 중국과 적이 아닌 친구가 되고 싶다라는 발언을 하고 있음.

 

 

또한 러닝메이트인 부총통 후보로 주미 타이베이대표부(사실상 주미 대만대사관) 대표인 샤오메이친을 임명함. 샤오메이친은 미국-대만 혼혈로 정계 입문 시기인 2002년까지는 미국 이중국적을 갖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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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국민당 - 허우여우이

 

선거 슬로건 - 인민이 허우캉(허우여우이+자오샤오캉)을 가지면 대만은 재출발할 것이다.

 

중국국민당은 장제스가 대륙에서 공산당에 밀려나 대만에 내려오면서 동시에 자리잡은 당. 약 30여년간 대만의 독재정당이었으며, 현재도 대만 사회에서 생각보다 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 하지만 최근에는 그 깊은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친중 이미지가 덧씌워져 상대적으로 외교적 사안에서 자유로운 지방선거를 제외하고는 별 힘을 못쓰는 상황.

 



허우여우이는 경찰 출신 정치인. 국민당 독재시기 말기부터 일선 책임자로써 활동했음. 이 시기 대만의 민주화와 독립을 주장하던 민주화 운동가 정난룽을 반역 혐의로 체포하려다 정난룽(사진)이 '국민당은 내 시체를 잡아갈지언정 내 정신을 잡아갈 순 없을 것이다'라며 자신의 사무실에서 분신자살하는 일도 있었음.

 



하지만 그럼에도 능력은 좋아 민진당 천수이볜 집권시기에 경찰청장으로 임명됨. 즉, 민진당 정권에서도 중용될 정도로 능력있었다는 셈. 실제로 민진당에게서도 정계입문 제의를 받았었다고.

 

이후 이전부터 평당원으로 있었던 국민당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2010년과 14년 2차례 신베이 부시장을 지냈고, 2018년과 2022년 선거에서 연이어 신베이시장(한국으로 따지면 경기도지사 정도의 포지션)으로 당선되어 재임중임.

 



확실히 2020년 선거의 후보였던 한궈위(사진) 당시 가오슝시장보다는 온건한 이미지로, 국민당이 그동안 떨쳐오지 못했던 친중 색채가 상대적으로 옅다는 평.

 

하지만, 이런 온건함 때문에 한궈위, 궈타이밍 등을 지지하던 강경파의 반발을 샀었음. 이들 강경파는 한때는 '허우여우이를 찍느니 궈타이밍이나 커원저를 찍는다'라 할 정도로 반감이 심했었는데, 어찌저찌 규합한 모양.

 





허우여우이도 이를 의식했는지, 부총통 후보로 자오샤오캉을 지명함. 자오샤오캉은 8~90년대 활동하던 정치인으로 1994년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서 강경 우익 후보로 출마했다가 국민당 후보와 표가 갈라져 민진당 후보에게 타이베이시장을 내준 이력이 있음. 참고로 그 때 당선되었던 타이베이시장이 바로 위에서 말한 민진당의 첫 총통 천수이볜.

 

이후로는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친국민당 성향 언론인 겸 시사평론가로 계속 활동해오다가 이번 선거에서 부총통 후보로 기용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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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민중당 - 커원저

 

선거 슬로건 - 약속을 지키고, 아름다운 대만을 얻어라


(의사 시절 사진)

 

커원저는 의사 출신 정치인. 국립대만대병원 의사로 활동하며 사회운동에도 참여하며 명성을 얻다가 2014년 민진당의 지지를 받은 무소속 후보로 타이베이시장에 당선됨.

 



하지만 2017~8년경을 끝으로 민진당과의 관계가 틀어지며, 재선 때는 민진당이 독자 후보를 내게 됨. 그렇게 치뤄진 2018년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서는 국민당 후보를 0.23%라는 초접전 끝에 제치고 재선 성공.

 

대만민중당, 그리고 커원저의 대략적인 성향은 중도~중도보수, 대만인 정체성 우선, 하지만 대만 독립운동에는 반대임. 그래서 초기에는 민주진보당 지지자들을 잠식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중국국민당 지지자(주로 보수 성향이지만 중국국민당의 친중 노선을 꺼려하는 사람들)들을 더 많이 잠식하고 있다라는 평이 있음.

 

이후 2019년 독자적인 정당인 대만민중당을 창당하고, 2020년 선거에서 비례대표로 의석 5석을 얻음.

 

대만은 시장 연임제한이 2선이기 때문에 2022년을 끝으로 타이베이시장에서 퇴임하고 이후로는 대선 준비에 전념해왔음. 앞의 2명이 현직이 있는 것과는 다르게 커원저는 현재 맡은 직책이 당대표 말고는 딱히 없어 일찍부터 보다 폭넓게 활동할 수 있었던 것.

 

오랫동안 이어져온 양당 위주 정치에 신물이 난 젊은층이 주로 지지하는 후보이나, 단일화 파동 이후로 지지율이 하락하는 추세. 이에 따라 사퇴설이 돌았지만 본인은 부정한 상태임. 대만은 총선과 대선을 같이 치루기 때문에 지더라도 완주하는게 민중당 입장에서는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

 

참고로 대만의 경우 후보등록 이후 시점에서의 사퇴는 가능하나, 사퇴하며 다른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불가능함.

 



그가 채택한 부총통 후보는 우신잉으로, 금융가 가문 출신의 금융인임. 미국 태생이라 미국 이중국적자였으나 2014년 미국 국적을 포기. 이후 2020년 대만민중당 입법위원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여 낙선했으나 2022년 의원직을 승계받아 현재 입법위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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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 궈타이밍(사퇴)

 

궈타이밍은 사업가로써, 1974년 폭스콘(한국에는 애플의 휴대폰 생산 하청기업으로 유명)을 설립하여 막대한 부를 가진 사람임. 이와 더불어 이전 정치경력이 없다라는 점이 겹쳐져 대만판 트럼프로 불리기도 한 후보임.

 

성향은 친일, 친미, 친중, 반한(...). 애초에 폭스콘이 본격적으로 커졌던 것이 중국 대륙공장이었던만큼 친중이며, 반대로 사업영역이 겹치는 한국은 극도로 싫어함.

 

원래는 국민당 경선에 나섰으며, 주로 이전에 한궈위를 지지하던 강경파 측에서 밀었던 후보이나, 아무래도 정치경력이 없는 후보+친중 성향이 매우 강한 후보라서 그런지 국민당 내부에서도 경선 없이 컷오프당하고 허우여우이가 공천되었음.

 

당초 궈타이밍은 후보가 되지 못하더라도 승복하고 국민당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고 했으나, 지지자들은 무소속 출마를 권유했고, 결국 국민당 탈당 후 무소속 후보로 나서게 됨.

 

하지만 그의 독자출마는 보수표를 2갈래도 아닌 3갈래(허우여우이, 커원저, 궈타이밍)로 갈라 라이칭더 좋은 일만 시켜준다는 이야기가 많았고, 결국 후보등록 마감일인 11월 24일, 결국 후보 사퇴를 선언하며 레이스를 마무리지음.

 



그가 부총통으로 내세웠던 사람은 여배우 라이페이샤인데, 실제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에서 총통 후보 역을 연기한 적이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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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여론조사에서는 라이칭더가 여유롭게 앞서고, 그 뒤를 커원저와 허우여우이가 따라가는 추세였음.

 

그러다가 커원저가 지지율을 올려 허우여우이와 경합하는 모양새를 띄더니, 허우여우이는 궈타이밍에게 지지율을 뺏겨 3위로 추락하는 모양새를 보였음.

 

이후 라이칭더와 커원저의 지지율이 조금 빠진 상황에서 커원저-허우여우이 단일화시 단일후보가 이기나 독자출마시 라이칭더 승리로 나오자, 양측이 후보 단일화에 합의함.

 

하지만 후보 단일화 무산 후 커원저의 지지율이 빠지고, 궈타이밍의 지지율을 허우여우이가 흡수하며 현재 상황에 도달함.

 

막판 여론조사에서는 친민진당 언론에서는 라이칭더의 오차범위 밖 우세, 그 외 언론에서는 라이칭더의 오차범위 안 경합우세를 전망했음.

 

대만은 한국과 비슷하게 여론조사 공표 금지기한이 있으며, 따라서 선거 10일 전인 1월 3일부터는 여론조사 추이를 알수 없는 깜깜이 기간에 돌입해있어서 그 사이 표심의 변화가 있었을지가 관심 사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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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원저-허우여우이의 단일화 시도(최종 무산)

 

커원저-허우여우이 단일화시 단일후보가 이기나 독자출마시 라이칭더 승리로 나오자, 양측이 후보 단일화에 전격 합의했음.

 



당초 커원저는 100% 여론조사(당연히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자신이 유리), 허우여우이는 양당 당원이 참가하는 당원투표로 결정(당연히 규모가 훨씬 큰 국민당이 유리)를 주장했으나, 막판에 국민당 전 총통 마잉주(사진)의 중재로 100% 여론조사로 단일화를 확정지음.

 

여론조사 단일화 방식은 '커원저 vs 라이칭더', '허우여우이 vs 라이칭더'의 2가지 양자대결을 조사하여, 어느 후보가 라이칭더를 상대로 더 많은 지지율 우위를 가져갔느냐라는 방식이었음.

 

이렇게 단일화가 마무리되고 야당의 정권 탈환이 기정사실화되나 싶었는데, 단일후보 발표 당일, 일이 터졌음.

 

양측이 '커원저가 통계상 오차범위인 ±3% 이내로 이겼을 시에는, 허우여우이가 단일후보'(다시 말해 커원저는 ±3%를 초과해 이겨야 단일후보가 될수 있다)라는 내용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몰래 합의했던 것이었음. 당연히 불리한 쪽인 민중당 지지층이 맹반발.

 

거기다가 단일화 룰 해석 문제도 터졌는데, 커원저 측은 '오차범위가 ±3%라는건, 커원저가 3% 이상만 이겨도 되는거 아니냐', 허우여우이 측은 '오차범위가 ±3%라는 것은 양쪽으로 3%씩이라는 이야기니 합쳐서 커원저가 6% 이상 이겨야 되는것 아니냐'라는 서로 다른 해석을 갖고 온 것임.

 



이 해석이 중요한 것이 조사대상 여론조사 6개 중에서 오차범위를 3%로 설정하면, 커원저 vs 허우여우이가 3:3 동률을 기록하지만, 6%로 해석하면 커원저 vs 허우여우이가 1:5로 허우여우이가 이기기 때문.

 

결국 단일화 룰 해석 문제로 양측의 단일화 시도는 결렬되었음. 하지만 커원저는 오차범위 관련 밀실합의로 인해 민중당 지지층에게서도 신뢰를 잃었고, 이 단일화 결렬 이후로 지지율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 상처만 남은 단일화 시도가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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