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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군 최고의 훈장을 받은 "비티니아 왕비님"

후니의 궁금소 2024. 1. 11.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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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갈나무 잎으로 만든 관인 "시민관(Corona Civica)"은 위기에 처한 전우의 생명을 구한 로마 군인에게 주어지는

로마군에서 두 번째로 명예로운 훈장이자, 실질적으로는 로마군 최고의 훈장이었다.

시민관을 받을 용사에게 목숨을 빚진 전우가 떡갈나무 잎 - 떡갈나무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위대한 주신

제우스(유피테르)를 상징하는 성스러운 나무였기에, '유피테르 신께서 그대의 용기를 축복하시노라'는 의미였다 - 으로

직접 관을 만들어 선사하며, 진짜 떡갈나무 잎으로 만든 이 수여식용 관과는 또 별개로

떡갈나무 잎 모양으로 만든 황금 시민관을 지휘관이 수여하게 된다. 

 

 

'실질적으로' 최고인 이유는, 로마군에는 장군이 적장과 일기토를 떠서 쓰러뜨린 뒤, 득템한 적장의 갑옷을

떡갈나무에 입혀 만들어서 카피톨리노 언덕에 있는 유피테르 신전에 바치는 트로피, 

진정한 로마군 최고의 명예인 스폴리아 오피마(Spolia Opima)나

군단 전체를 구했다고 인정받은 이에게 주어지는 관인 풀잎관(Corona Graminea)도 있었지만

이것들은 2천년 로마사, 중세 동로마는 빼고도 천년 고대 로마사에서 받은 사람이 비유가 아니고 문자 그대로 손에 꼽았기 때문이다. 

스폴리아 오피마를 받은 이는 로마사에 딱 세 명, 그것도 신화시대 인물들을 빼고 교차검증이 가능한 역사시대 실존인물은 

한니발 생애 3대 호적수 중 한 명이었던 "이탈리아의 검" 마르켈루스 단 한 명에 불과하며

풀잎관 또한 로마사에 받은 이가 단 9명뿐이다.

 

 

 

 

 




따라서 로마군이 실질적으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은 바로 시민관이라 할 수 있었다.

로마군에는 시민관 외에도 적 도시의 성벽 위에 가장 먼저 올라가고도 살아남은 용사가 받는, 성벽 모양의 황금관인 "성벽관",

적의 숙영지를 공격할 때 참호를 넘어 가장 먼저 뛰어들어간 이가 받는, 말뚝 박힌 요새 모양의 "참호관",

해전에서 적선에 가장 먼저 뛰어든 이가 받는, 뱃머리 모양의 "해군관" 등의 명예로운 훈장들이 있었지만,

시민관은 이 모든 훈장들을 능가하는 (사실상) 최고의 명예로 인정받았다.

이런 훈장을 받은 이들은 설령 그가 일개 군단병이었다 해도, 고향에 돌아가면 "우리 동네 개선장군"으로 그 지역의 영웅이 되어서

축제 날 열리는 종교 퍼레이드에서 관을 쓰고 앞장서 행진하며 온 동네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을 수 있고,

축제 행사로서 열리는 각종 공연 및 경기에서 평생 공짜 VIP석을 보장받았다.

그런데 시민관을 받은 이는 이보다도 한술 더 떠서, 그가 시민관을 쓰고 경기장에 입장하면 원로원 의원들조차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먼저 경의를 표해야 하고, 시민관을 받은 영웅은 답례한 뒤 원로원 의원들 곁에 나란히 앉을 수 있을 정도였다.

 

 

시민관이 이렇게까지 대단하게 여겨졌던 것은, 시민관은 단지 전우의 생명을 구한 것만으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로마군이 패주하던 중에 부상당해 쓰러진 전우를 버리지 않고, 아수라장 속에서도 끝까지 부축해 함께 퇴각함으로서

전우의 생명을 구한 용감한 군단병이 있다고 해 보자.

물론 이것도 인생 최대 자랑급 명예이며, 모든 군단병 전우들에게 우리 군단 최고의 상남자란 리스펙을 얻겠지만

심지어 이 군단병조차도 시민관을 받을 수는 없다.

시민관은 전투에서 쓰러진 전우를 구해낼 뿐만 아니라, 쓰러진 전우를 대신해 그의 위치를 대신 사수해내기까지 해야 

겨우 수상 자격이 인정받는 진짜 미친 난이도의 업적작이었기 때문이다.

 

 

말이 쉽지 한번 생각해보자.

웬만해선 자기 한 몸 돌보기도 급급한 백병전의 북새통에서, 전우를 쓰러뜨렸을 정도로 강력한 적병을 상대로,

쓰러져 있는 전우까지 적의 공격에서 커버치면서, 내 원래 위치 + 전우가 쓰러져서 빵꾸난 위치까지 전부 사수해내야 된다;;;

스폴리아 오피마급까진 아니어도 이게 진짜 현실적으로 달성하라고 만든 도전과제 맞나? 수준의 억까지만

강한 자들만이 살아남던 낭만의 문명 로마에서는, 결코 자주는 아니어도 이따금씩 이걸 해내는 인간병기들이 등장하곤 했다.

 

 

 






그런 시민관을 받은 로마시대 인간병기들 중에서도 가장 네임드가, 바로 저 유명한 "0대 황제" "대머리 난봉꾼"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카이사르가 한낱 십대 소년에 불과하던 시절, 내전에서 승리하여 온 로마를 민중파의 피로 물들이던 종신독재관 술라가

"(민중파 주요인사 킨나의 딸이었던)아내랑 이혼만 하면 살생부에서 니 이름은 지워주마" 라는 '관대하기 그지없는' 제안을 했을 때

와이프를 버리는 대신 술라에게 엿을 날리고 야반도주하는 미친 깡을 보여줬던 카이사르는

로마에서 탈출해 길고 험난한 피난길 끝에, 로마령 아시아 속주(오늘날의 터키 서해안)총독의 밑까지 흘러들어가 

그의 부관으로서 군 생활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이 때 일이 이상하게 꼬여서, 카이사르는 게이 의혹이라는 괴악한 루머에 시달리게 되었다.

오늘날의 그리스 레스보스 섬에 있었던 도시 미틸리네가, 겁대가리를 상실했는지 로마를 상대로 반기를 들고

인근의 해적들을 은밀히 돕기까지 하는 어그로를 끌자, 아시아 속주 총독이 미틸리네 토벌을 결정하고

로마의 속국이었던 인근 비티니아 왕국에 함대 지원을 요청하러 카이사르를 사절로 보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비티니아 왕 니코메데스 4세가 카이사르를 아주 마음에 들어해서 국빈 대하듯 후한 대접을 해주면서

카이사르는 비티니아 왕궁에 예정보다 훨씬 오랫동안 머물다 돌아가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니코메데스 4세가 카이사르를 보자마자 어멋...멋진 청년!!! 하고 한눈에 반했고, 카이사르가 암컷타락을 당했다카더라는

괴악한 루머가 쫙 퍼지게 되어, 카이사르는 졸지에 "비티니아 왕비"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인권의식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21세기에조차 게이, 그것도 바텀게이라면 유감스럽게도 사회적 인식이 절대 좋다고는 못하는데

하물며 고대의 기준으로도 씹마초 문명이었던 로마에서 '박히는 쪽'이라는 소문이 난다는 건

남자한테 깔려 앙앙거리는 계집 주제에 어디서 남자 행세를 하느냐?고 사회적 생매장을 당할 수 있는 일생일대 위기였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비티니아에서 돌아온 뒤 미틸리네 정벌에 참전, 불과 19세 혹은 20세의 나이에 

전우의 생명을 구하는 공로를 세워 총독에게 시민관을 수여받았고, 이로서 획기적으로 이미지를 개선하여 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

...순 미붕이 뇌피셜 망상에 불과하지만, 아니 비티니아 왕비님 같이 귀하신 분께서 어찌 이런 누추하고 위험한 곳에 ㅎㅎ하는

놀림을 받으면서, 씨발 내가 앞으로 평생 이딴 취급을 받느니 싸우다 뒤지고 만다 하고 이 꽉 물고 싸웠지 싶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미지 개선이란 게

카이사르가 기대한 건 봐라! 이렇게 용맹한 로마의 사나이가 계집같이 굴었을 리 있겠느냐! 고 루머가 완전히 불식되는 거였을 텐데

막상 현실에선 와! 비티니아 왕비님은 그 어떤 로마 사나이에게도 뒤지지 않는 여장부구나! 

아 솔직히 저정도면 박히고 싶어하는 은밀한 취향이라도 대충 눈감아 줘야짘ㅋㅋㅋㅋㅋㅋ하고

대단한 용사로서 리스펙을 얻은 것과는 별개로, 바텀게이 이미지는 전혀 사라지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나중의 일이지만, 술라 사후 사면받은 카이사르가 귀국해서 키케로를 만났을 때

키케로가 "로마의 모두가 니코메데스 왕이 당신에게 무엇을 주었고, 당신은 왕에게 무엇을 주었는지 안다오."라 빈정댔을 정도였다.

 

 

 

 

 




그 후로 카이사르가 아무리 그의 "남자다움"을 전장에서 증명해 보여도 -

자길 납치해 몸값을 요구했던 해적들을, 풀려난 뒤 사설 함대를 이끌고 토벌해도,

루시타니아(포르투갈)을 정복해도,

갈리아(프랑스)를 정복해도,

심지어 내전에서 승리해 로마의 일인자, 사실상 0대 황제가 되고 가장 영광스러운 대개선식을 거행해도

"비티니아 왕비"라는 별명은 끝끝내 사라지질 않았고, 카이사르는 죽을 때까지 거의 40년을 암컷타락게이드립에 고통받아야 했다.

 

 

["♩갈리아는 카이사르에게 정복당했고, 카이사르는 니코메데스 왕에게 정복당했다네. 

갈리아를 무찌르고 개선하신 카이사르가 납신다!♪

셋 중에 가장 위대한데도 니코메데스 왕은 월계관을 쓰지 못했다네♬"

   

- 수에토니우스 <카이사르의 생애> 中 "로마 군단의 개선행진가"]

 

 

 

 

- 오사다 류타 저 "고대 로마 군단의 장비와 전술"

스티븐 콜린스 저 "로마의 전설을 만든 카이사르 군단"

필립 마타작 저 "로마 공화정"

Civic Crown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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