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소

한 뱃사람이 식민지 콩고에서 겪은 경험담을 담은 명작 소설

후니의 궁금소 2023. 12. 30.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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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뱃사람은 원래 배를 탈 팔자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뱃사람은 폴란드계 귀족 출신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수 없게도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반 러시아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부모님이 유배를 당하게 되었고,
이 뱃사람은 정치범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일정 나이가 되면 러시아 군대에서 25년을 복무해야 했다.
그는 러시아의 전제 정치 아래에서는 희망이 없다고 마르세유에서 선원으로 활동하지만,
낭비벽으로 인해 재정이 파탄났고, 결국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다행히 부유했던 외삼촌이 그를 도와주게 되었고, 그는 마음을 다 잡고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렇게 그는 영국 상선을 전전하면서 선원들과 어부들과 대화하며 구어체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셰익스피어와 바이런의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문학적 영어를 배웠다.
그러다가 1890년에 브뤼셀로 가서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가 조직한 '콩고 상부 교역을 위한 무명 벨기에회'
콩고 강을 운항하는 기선의 선장직으로 계약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전임자가 부족민과 다투다가 살해당해서 그 자리가 공석이었기 때문이다.
 
 
 
 
 
 
 
 
 
계약을 한 뒤 1890년 5월 10일에 그는 당시 콩고 자유국의 수도 보마에 도착했고,
이후 콩고 상류 지역의 킨샤샤로 이동한 뒤 최종 목적지인 스탠리 폭포에 도착했다. 
킨샤샤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병든 교역상 조르주 앙투안 클라인을 태우고 갔지만,
클라인은 도중에 사망하고 선장이었던 그도 중도에 계약을 파기하고 6개월 만에 유럽으로 돌아갔다.
그는 왜 중도에 계약을 파기했을까?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로, 킨샤샤로 다시 돌아갈 때 그는 말라리아와 이질에 걸려 고생했다.
두 번째, 교역소장인 카뮈 델코뮌과 회사 부이사와 관계가 갈수록 악화되어
자신에게 선장직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콩고에서 본 풍경들이 벨기에 사회에 퍼져있던 그런 상상의 모습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야만적인 흑인들을 계몽하고 문명화하는 데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표면적으로 인도적 계몽을 추구했던 벨기에의 아프리카 식민 사업에 대한 기대가 있었으나, 
정작 그가 콩고에서 목격한 것들은 끔찍한 착취와 학대가 자행되는 참혹한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럽으로 돌아온 이 뱃사람은 자신이 콩고에서 겪었던 일을
한 편의 단편 소설과 한 편의 중편 소설로 써냈다.
하나는 <진보의 전초 기지(1896)>과 나머지 하나는 그 유명한 소설 <어둠의 심연(1899)>이었다.
이 뱃사람의 이름은 조지프 콘래드. 나중에 비영어권 출신으로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가 되었다.
 
 
 
+ 이 <어둠의 심연>을 당시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감독이 각색해서 영화화했다.
원작의 배경인 19세기 콩고에서 베트남 전쟁으로 시공간적 배경을 바꿨고,
제국주의의 광기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을 담은 메시지를 전쟁의 광기에 대한 비관적 시선으로 바꾸었다.
바로 이 영화는 지금도 전쟁 영화 명작으로 손꼽히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1979)>이다.
명작 소설에 영감을 받아 전혀 다른 장르의 명작이 탄생한 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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