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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통화란 무엇인가?
아이러니하게도, 기축통화의 정확한 정의는 없다.
학자들마다 기축통화란 이런 것이다! 라는 의견이 서로 다르고,
따라서 '이 시기에서 이 화폐는 기축통화였다!'에 대한 찬반 논쟁 역시 여전히 진행중이다.
그럼 기축통화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바로, 전세계 (아마) 모든 학자들이 동의할 기축통화를 하나 들고 와서
그 화폐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대충 얘랑 비슷하면 기축통화라 할 수 있음'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 화폐가 바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미국 달러($)다.
$$$
기축통화의 조건
그래서 이 달러가 가진 특징을 일반화한다면 기축통화의 조건이 되는데
이 조건들은 그럼 뭘까?
기축통화의 조건들을 나열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높은 신뢰성과 충분한 공급량
2. 거대한 국가 체급
3. 발달된 금융시장
우리가 흔히 '준기축통화'라고도 부르는 국제통화들,
즉 유럽의 유로, 일본의 엔, 중국의 위안, 영국의 파운드 등은
위의 세 가지 조건들 중 부족한 부분들이 있는 만큼
기축통화라 하기에는 손색이 있다.
따라서 위의 세 가지 조건들을 살펴보면서 기축통화의 의미를 탐색하도록 하겠다.
1. 높은 신뢰성과 충분한 공급량
기축통화로 인정받기 위해서 해당 화폐는
극도로 높은 신뢰성과 전세계적인 공급량을 제공해야 한다.
우선은 신뢰성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겠다.
높은 신뢰성이란 곧 안정된 가치를 의미한다.
전세계가 무역에 사용하는 화폐의 가치가 널뛰기한다면
그걸 주요 결제 수단으로 써먹기는 불가능하니 말이다.
이 안정적 가치를 가지기 위해선 최소한의 기본 요건으로
정치적인 안정, 강력한 군사력, 비교적 안정적인 물가가 요구된다.
준기축통화들 역시 그럭저럭 충족하는 이 요건들은
정말 최소한으로 필요한 요건들이다.
정치적으로 혼란한 상황이라면 정부가 화폐의 가치를 보증해줄 수 있을까?
군사력이 부족하다면, 만약 다른 국가가 그 나라를 점령해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물가가 날뛰어서 공기밥 하나에 천원이던 게 갑자기 오천원이 되어버린다면?
사실 생각해보면 좀 당연하게 여겨지는 요소들이다.
따라서 기축통화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더 나아가서
불변에 가까운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게 뭐냐고?
'페트로 달러'다.
최근 중국이 사우디랑 친해지면서 부쩍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개념이다.
여기서 말하는 '페트로 달러'라 함은
석유를 오직 달러로만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독점 시스템이다.
1974년, 1차 석유파동 이후 미국과 사우디가 맺은 비공식 조약으로 시작된 이 시스템은
'석유를 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달러의 절대적인 신뢰성을 뒷받침한다.
여담으로 이 '페트로 달러' 이전까지 달러의 신뢰성을 담보하던 건
금본위제도를 바탕으로 한 금이었다.
금 1 온스 = $38 의 방식으로 달러의 가치를 보장하는 방법이었으나
금본위제도가 망하면서(...) 미국은 '페트로 달러'를 출구전략으로 사용했다.
사실 지금도 금은 어느정도 물적 담보로서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과거 금본위제도 시절만큼의 위상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금을 높은 가치를 가진 비축자산으로 여기고 있고
미국 역시 이에 맞춰 전세계 금의 대부분을 보관하고 있다.
중국이 원유 결제 대금으로 위안화를 밀어붙이는 것도
달러의 신뢰성에 흠집을 내면서
동시에 위안화(貨)의 신뢰성을 올리는,
기축통화 등극을 위한 노림수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다음은 충분한 공급량이다.
기축통화국은 전세계에서 해당 화폐가 쓰이는 만큼
전세계의 수요를 감당할 만큼의 공급을 버텨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 이상 설명이 딱히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간단하고 직관적이지만,
문제는 앞에서 말한 신뢰성과 이 공급량은 서로 반비례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를 처음 제기한 사람의 이름을 따 '트리핀 딜레마'라고도 부른다.
간단히 설명해보자면,
기본적으로 기축통화는 일정한 가치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수요에 맞춰 전세계에 충분한 공급량을 제공하면
공급이 늘어나는 만큼 기축통화의 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반대로 일정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공급량을 늘리지 않으면
전세계에 기축통화의 양이 부족하니 자칫 전세계 경제가 나락으로 가버린다.
이 끔찍한 이지선다는 금본위제도를 박살냈던 원인이 되었고,
페트로 달러 시스템인 현재까지도 어떻게 해결이 안 되고 있는 골칫덩이다.
2. 거대한 국가 체급
기축통화로 인정받기 위해서 해당 발행국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무역 비중이 높아야 한다.
즉, 전세계의 수입, 수출에서
해당 국가의 수입,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야 한다.
그래야 그 나라의 화폐가 많이 쓰인다.
보다 쉽게 이해하자면,
많이 쓰이는 게 업계 표준이 된다
라고 이해해도 괜찮을 듯 싶다.
잘 쓰이지도 않는 게 표준이 되는 건 좀 이치에 안 맞지 않나?
그리고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무역 비중이 높으려면?
국가 자체의 경제규모도 커야 한다.
즉, 거대한 내수 시장이 있어야 한다!
국가 체급이 두 번째 조건으로 꼽히는 건 이 때문이다.
여담으로 준기축통화국들 중에서도 1억에 못 미치는 내수시장 규모를 가진 건
영국밖에 없다.
다시 국가 체급 이야기로 돌아가서,
업계표준화(化) 말고도 국가 체급이 중시되는 또다른 이유는
적자의 감당 때문이다.
한 국가의 화폐가 기축통화가 된다는 건
앞서 말했듯 전세계가 그 화폐를 쓴다는 의미다.
그 말은 즉 국내에서 쓰이는 화폐의 양보다
국외에서 쓰이는 화폐의 양이 훨씬 더 많다는 의미이고
자연스레 화폐의 수요 역시 국외에서 더 많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다른 나라들은 자신들이 가진 무언가를 들고 와서
기축통화와 맞바꿔서 다시 나가는데,
이를 우리는 기축통화의 유출, 그리고 무역 적자라 부른다.
따라서 기축통화국은 전세계 규모의 적자를 감당할 수 있는
거대한 국가 체급을 가져야 한다.
전세계에서 이 정도의 적자를 감당할 수 있는 건 미국만이 가능한 이유이고,
트럼프가 무역흑자 타령을 했을 때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 대한 우려가 나온 이유 역시
기축통화는 필연적으로 적자를 불러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이 기축통화국으로 올라설 수 없다는 주장의 이유 중 하나 역시
중국의 경제는 적어도 아직까진 무역흑자를 바탕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든다.
3. 발달된 금융시장
기축통화로 인정받기 위해서 해당 발행국은
고도로 발달된 금융시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발달된 금융시장이 성립하기 위해선
자본자유화, 즉 금융시장 개방이 전제되어야 한다.
자본자유화란 본국 화폐와 외화 간의 자유로운 거래와 교환을 의미한다.
즉, 앞서 말했듯 전세계 무역에서 기축통화가 사용되는 만큼,
기축통화국에 찾아가 가진 화폐를 자유롭게 기축통화로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자본자유화가 이루어지고 금융시장이 개방되다 보면
자연스레 금융시장이 성장하고 발달하게 된다.
여기서 이 발달 단계가 중요한 이유는
기축통화국으로 올라섰을 때 나타난다.
자국 화폐가 기축통화로 올라선다면
앞서 말한 거래와 교환에서 기인한
막대한 자본 흐름이 자국 금융시장에 찾아온다.
이런 전세계 규모의 자본흐름이 급격하게 밀어닥칠 때
만약 금융시장이 이를 충분히 감당하고 관리할 수 있을 만큼 발달하지 못했다면
해당 국가의 금융 시장은 그 거대한 자본흐름에 짓눌려
폭등과 폭락을 반복하게 된다.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 폭등과 폭락이 곧 화폐 가치의 불안정성을 의미하고
1번 항목에서 이야기했던 화폐의 신뢰성이 낮아짐을 뜻하기 때문이다.
기축통화의 1번 조건은 뭐다? 절대적인 신뢰성이다.
한편 중국이 가지는 딜레마는 여기서 기인한다.
현재 중국은 자본자유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본의 플라자 합의와 한국의 IMF를 지켜본 중국은
변동환율제도와 자본자유화에 우려를 나타내며
국가 통제 하에서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만약 중국의 자본자유화가 당장 이루어진다면
달러의 공급 증가로 인한 중국 환율 하락,
환율 하락에 따른 수출 경쟁력 상실과
막대한 자본 유출에 따른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
중국이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포기하지 않는 한
기축통화로서 필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자유화를 진행할 가능성은 낮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이 고민중인 방법 중 하나로
CBDC, 즉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가 있는데
이 글에서 간단하게 설명하기엔 다소 복잡하고 본문과 동떨어진 내용이라 생략한다.
여담으로 앞서 국가 규모에서 이야기한 영국의 경우,
내수시장의 규모가 1억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준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있던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이 고도로 발달된 금융시장 덕분이다.
요약하자면,
기축통화의 정의는 정해진 바 없다.
다만 높은 신뢰성과 충분한 공급량,
거대한 국가 체급,
고도로 발달된 금융시장을 갖췄다면
그 나라의 화폐를 기축통화라 할 만 하다.
결론은, 기축통화란 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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